서안씨 블로그


안녕하세요. 로에게 평을🙏 서안씨입니다. 오늘부터 마음공부를 함께 나누려고 해요. 조금은 어려운 내용일 수 있지만 함께 "나를 찾는 시간"으로 함께 만들어갔으면 좋겠어요. 뭔가를 쫓고 추구하는 욕망, 욕구의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세계. 이 세계는 쉽게 얘기해서 우리의 마음의 세계죠. 사람들은 각자의 영적지식을 바탕으로 이 모든 걸 넘은 텅 빈 세계를 말하고자 그렇게 논리를 세워요.


먼저 방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흔히 그런 말을 해요. 상을 내려놔야 되지 않냐고. 그런데 상을 내려놓고 무슨 표현을 할 수 있을까요? 표현하는 족족히 전부 상일 텐데. 내 입에서 나오자마자 상일 텐데. 문제는 상이다, 아니다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이걸 한 방에 뭔가 재정립시킬 수 있는 단어가 참 없는 거예요. 제가 저희 스승님의 가르침 속에 깨달아진 바에 의해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전달하는 건 방향성이에요. 상이 있다 없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상의 방향성이 중요한 거예요. 상이 생기고 싶어서 생길까요? 우리 몸이 생기고 싶어서 생기나요? 의지하고 아무 상관도 없잖아요. 그냥 있는 세계 속에서 우리가 인식하고 자각하는 우리의 마음의 현상세계를 살아갈 뿐인 거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있다, 없다고 하는 걸 놓고 고민하고 그걸 진리관에 연결시켜요. 왜 그럴까요? 그건 한결같이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일 뿐이지. 고통에서 벗어나서 그 어떤 마음도 갖지 않는 세계를 가고 싶은 거예요.


왜? 마음을 가지면 고통스러우니까.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고통스럽잖아요. 이 행복은 언젠가 다 할 것이기 때문에. 이 행복이 언젠가 끝난단 말이에요. 아직 행복한데, 지금 이 순간 행복한데 행복이 끝날 걸 생각하니까 갑자기 두려워져. 그럼 행복이에요, 불행이에요. 또 행복을 행복이라고 느끼는 이유가 뭘까요? 불행의 반대말 아닐까요? 불행의 경험에 의지하여 행복이 존재하는 거잖아요. 그런 식으로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불행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노력을 하다 보니 거기에서 나와지는 흐름들이 어떠한 마음도 잡지 않는 상태를 추구하게 되는 거예요. 어떠한 마음도 잡지 않는 상태. 그러면 행복도 고통도 없다 이거죠. 그냥 평화로운 상태. 그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마음을 잡는 순간, 행복을 추구하는 순간, 이미 고생한다는 얘기 인것같아요. 불행에서 행복으로 넘어가고 싶다는 걸 인정해 버리는 거라 생각해요. 행복을 추구하는 한, 자기 스스로 고통스럽다는 얘기를 증거 하는 소리예요. 그 소리인 거야. 불행에서 행복으로 넘어가고자 하는 그런 표현 자체가 아주 언어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마음없음의 세계를 자꾸 말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게 본질이 아니다. 마음 없음의 세계가 본질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성을 말하려고 하는 거예요. 거기에 욕망이라는 게 있단 말이죠. 이미 우리가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욕망 속에 있잖아요. 아무리 깨닫는다 할지라도 그의 마음이 그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프면 아프다고 하는 거고. 그래서 그들은 뭐라고 해요? 욕망 자체가 나의 불성이라고 말할 거야 이제. 맞는 말일까요?

 

 

헷갈리거든요. 나도 욕망 갖고 있으면 나도 불성이에요? 다 그렇게 얘기하겠죠. 딜레마에 빠져버려요. 놓치지 말아야 될 것. 알고 보면 욕망이라는 것. 뭘 추구하는 걸까요? 바로 방향성이에요. 근원을 향하여라는 방향성. 근원에서 근원을 향하는 거예요. 근원과 근원은 둘이 아니잖아. 둘이 아닌 근원을 향할 뿐이란 말이야. 그 작용성이 있단 말이에요. 이 작용성. 이것이 바로 생명력이에요. 그것에 의해서 무수한 삼라만상이라고 하는 생명현상이 일어나고 의식현상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고.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상이라는 현상이 일어났는데 그 상에 빠져버렸다. 그래서 아상과 법상이 나와서 그걸 진짜로 착각하고 거기에 머무는 마음. 그게 잘못됐단 것이지요. 생명력은 머무는 게 아니에요. 끊임없이 흘러가는 거예요.

 

 

근원에서 근원을 향하여. 그래서 둘이 아닌 둘이의 작용성을 경험하는 거예요. 끊임없이. 이게 바로 생명력이에요. 바로 근원을 향한다고 하는 이 방향성을 이 두뇌가 인식을 못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흐름 속에서 우리는 생명력의 경험을 할 수 없는 상태로 가는 거죠. 난 뭘 추구하는 걸까요? 여러 가지를 가정해도 상관없어요. 성공하는 것. 뭔가의 아름다운 이상을 이루는 것. 내 뜻대로 뭔가를 이루는 것. 이루는다는 것은 권력과 명예를 얻는 것. 남들이 날 우러러봐줬으면 좋겠는 것. 깨달음을 얻었으면 좋겠는 것. 말았으면 좋겠는 것.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는 것. 멋있는 사람과 사랑을 나눴으면 좋겠는 것. 거기서 경험하는 건 뭘까요? 뭘 경험하는 거예요? 무수한 경험의 모습들은 다르다 할지라도 무엇을 경험하는 걸까요?

 


간단합니다. 생명력. 생명력을 경험하는 거예요. 그 하나의 무언가를 통해서 생명력을 경험하다 보니 그것보다 더 강력한, "보다 더 깊은 생명력의 경험이 있네" 라는 인식이 들어오면 그걸 또 쫓을 거예요. 우리는 더 강력한 에너지를 원합니다. 더 강력한, 더 깊은 에너지가 밖에서만 맴돌고 나하고 하나 되어 있지 못하면 그건 의미 없잖아요. 나와 하나 될 수 있는 생명력. 그걸 원하는 거죠. 그걸 추구하는 마음이 바로 욕망이에요. 욕망이 잘못된 게 아니에요. 뭐가 잘못됐을까요? 내 마음이 보다 더 안식할 수 있는 생명력을 얻고자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욕망의 본질이에요.


욕망이 어디서 일어났을까요? 그 욕망의 일어남의 모습을 우리는 뭐라고 표현해 볼 수 있을까? 그리움? 그리움이 됐든 욕망이 됐든 내가 일으키고 싶어서 일어나요? 저절로 내 안에서 일어나요? 그냥 일어나죠. 그렇죠? 그냥 일어나요. 예쁜 사람을 봐요. 예쁜 사람을 보면서 아 예쁘다. 순간적으로 딱 자각을 해요. 아 저런 걸 보더라도 예쁘다고 생각 안 해야지? 라고 하지만 자꾸 눈길이 가고. 순간적으로 예쁘다고 생각하고 반응하는. 이거 어디서 일어났을까요? 무식해서 까르마에서 일어납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죠. 그 까르마는 또 왜 그렇게 일어났는데? 왜 일어났을까요? 우리는 거기서 그냥 욕망이 일어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욕망은 얻고자 하는 거잖아요. 뭘 얻고자 하는 거냐는 말이지. 왜 예쁘다고 생각을 했을까? 왜 잘생겼다고 생각을 했을까? 잘생겼다고 생각했을까? 잘생겨서? 잘생겼다는 기준은 다 다를텐데, 나의 잘생김의 기준은 어떻다고 칩시다. 거기에 왜 나는 그렇게 반응하냐고. 바로 생명력을 얻고 싶어선 거죠. 내가 원하는 생명력을 줄 수 있는 모습인 거예요. 그러다 보니 생명력 있게 보이는 거고, 그래서 예뻐 보이고 아름다워 보이는 거예요. 예쁘다, 아름답다가 정해져 있지 않아요. 나한테 꽂혀서 생명력이 확 돌면 예쁘게 보여요. 어제까지만 해도 죽일 듯이 미워 보였던 사람도 에너지가 돌면 예뻐 보이는 거예요.

바로 우리는 뭘 얻고자 하는 거냐면 생명력을 추구하는 거예요. 생명력을 추구하는 이 의지. 이 의지를 우리는 생명의지라고 합시다. 생명의지 내가 이렇게 저절로 일어나요. 이 저절로 일어나는 이 생명의지가 내 머릿속에 있는 그 무언가 딱 결합이 돼서 난 이런 걸 원해, 난 이런 사람 되고 싶어 라고 생각하는 자기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지, 그 정체성 이전에 이미 내 안에 움틀거리는 에너지가 있거든요. 그게 바로 생명력이에요. 맛있는 음식이 있어요? 먹어요. 맛있는 음식이 있어서 만약에 먹는다면 거기서 내가 생명력을 얻는다고 했을 때 먹었는데 그게 그대로 배탈이 나서 설사로 나가 버렸어. 그럼 난 얻었는가요? 거기서 나는 얻은 게 없어요. 얻었다는 말은 뭐냐면, 생명력을 얻었다는 말은 그 무언가로부터, 내가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나에게 하나 된 에너지를 경험하게 해 주면, 그 생명력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내 에너지가 되면 그게 바로 얻은 거예요. 옆에 있는 게 얻은 게 아니라. 그 에너지가 내 속에 하나가 돼야 해요. 즉, 얻었다는 말은 뭘까요? "욕망을 통해서 얻는다"에요

하나 됨을 경험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이게 왜 그럴까요? 바로 안식을 경험하기 때문이에요. 안식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원하고 있거든요. 본능적으로 원해요. 그래서 안식을 경험하게 할 수 있는 생명력을 얻고 싶어 하는데, 이 생명력을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이걸 얻고자 하는 에너지를 아까 생명의지라고 표현했는데, 이 생명의지는 나 이전에 있으므로, 나의 근원이기도 하므로 근원적 생명의지라고 표현합시다. 근원적 생명의지가 나라고 하는 개체성으로 뭔가를 갖고 싶다는 욕구와 욕망을 일으켰는데, 피상적으로는 이렇게 생긴 것을 갖고 싶고, 난 이런 존재가 되고 싶고, 이런 삶을 살고 싶다고 머리로는 생각할 지연점, 거기서 진짜 얻으려고 하는 건 뭘까요? 바로 생명력을 얻고 싶은 건데, 어떤 생명력일까요? 짜릿한 자극? 이루었다는 그 느낌, 성취감? 아니에요. 근원적 생명력을 얻고 싶은 거예요.

내 일에서, 내 삶에서, 그 속에 있는 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그 관계 속에서 근원적 생명력을 얻고 싶어요. 왜 그럴까요? 이것 때문에. 하나 되고 싶어서, 안식하고 싶어서. 어디서 안식해? 근원적 생명력이. 바로 근원적 생명의지는 근원적 생명력에서 안식을 얻는 거예요. 왜? 그게 둘이 아니니까. 원래부터 하나니까. 그래서 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나를 보고 싶은 거예요. 내 자식에게서 나를 보고 싶은 거예요. 내가 죽더라도 난 그에게서 영원히 살 것 같거든. 하나 되면 세계는 영원한 세계라고 할 수 있거든요. 여기는 죽는다 산다가 없어요. 그런 게 이원적인 그런 개념이 없다고. 상대성이 없다고. 그러나 그걸 우리는 상대성에서 구현하고 싶은 거야. 절대성을 상대성에서 느끼고 싶은 거예요.. 거기서 일어나는 게 바로 욕구예요. 욕구가 뭘 쫓았나요? 바로 이게 잘못된 이유가 근원을 쫓는 게 아니라 근원적 생명력을 쫓는 게 아니고 상을 쫓아요.

내가 옳다고 여기는 상을 쫓아요. 상에 빠져있는 거지요. 여기서 방향을 망각해버린 거예요. 외적인 상을 쫓느라고 그 근원을 향한 방향성을 잃어버렸고 그 결과 타인을 대하더라도 대상을 보더라도 대상과 그 타인의 근원을 향한다라고 하는 그것을 망각해 버린 거예요. 내 머릿속에 상이 박혀있어. 이렇게 생겨야 내가 편해. 전체 세상천지 다 거기에 틀에 맞추려고 해. 이 사람은 생명력을 얻고자 하는 노력보다는 내 머릿속에 박혀있는 상대로 세상을 내 운명을 만들려고 해요.

거기서 생명력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고집스럽게 "이렇게 돼야지" 자기는 뿌듯하고 만족한대. 그렇게 상에 빠져있다. 그 결과 내가 누군지 몰라요. 왜? 나의 근원을 모르니까. 바로 욕구가 근원을 향한 방향성을 망각했을 뿐 욕망이라고 하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라고요. 욕망을 다스린다라고 말을 한다면 욕망을 없앤다가 아니라 욕망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준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말인 거예요. 욕망이라는 것이 생명의 근원을 향하도록 그 방향을 명확하게 잡는 것. 그게 바로 마음을 다스린다. 이렇게 봐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될 때 내가 무언가를 추구한다고 한다면 나의 근원에서 추구하는 그 무언가의 근원을 향하는 온전한 소통을 경험하는 거예요. 이 온전한 소통이 바로 일체적 소통이에요. 이게 사랑이에요. 거기서 일체성을 경험해요. 생명의 안식을 경험하는 거예요. 이게 바로 욕구, 욕망의 본질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욕구, 욕망의 삶을 살아가는데 그런데 우리가 애고라고 하는 내가 있다라고 하는 또 나로 말미 아마 경험되는 것이 진짜 존재한다라고 하는 그 생각으로 말미 아마 의식계가 형성 돼버려요. 그 의식계가 나름대로 각각의 경험의 수준에 따라서 아직 모르는 그 근원적 생명도 모르고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점점점 삶을 살아가면서 삶을 수정해요. 근원을 향한 방향성으로 점점 수정해 나가면서 그의 의식이 그 생명력을 받아 성장되어 가는 의식 수준이 변화되어 가는 그 과정이 바로 의식성장과정이라고 본다면 거기에 각각의 의식계가 형성되는 거예요.

 


내 의식 이전 상태에서 일어나는 추구한다는 이 에너지, 이 본능적 그리움. 이 그리움이 작동되는 욕망이라고 하는 모습은 세계의 깨달음을 겪든 무세계의 깨달음을 겪든 붓다의 깨달음을 겪든 절대로 못 벗어나요. 이게 본질이니까. 생명력의 본질이란 말이에요. 모습이란 말이에요. 그게 나타났단 말이죠. 나와 너라고 하는 삶의 모습으로. 그래서 절대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오늘은 생명력의 본질로 마무리하고 글을 마칠까 해요. 평안한 날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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