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씨 블로그

안녕하세요. 로에게 평을 서안씨입니다🙏 오늘은 끌어당김의 법칙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순수한 그리움'이 바로 여러분의 안내자예요. 여러분에게 내재되어 있는 순수함 자체가 여러분들의 진짜 '나'이며 여러분들의 안내자가 돼요. 그리움에 자각하고 그리움에 사무치고 그런 어떤 과정들을 통해서 그리움 자체가 정화가 돼야 해요. 카르마로부터 정화가 될 때 선명한 나의 길이 보여요. 그럴 때 우리는 모든 존재를 품어서 아는과 동시에 그들의 근원을 향할 수 있는 거예요. 내가 근원을 향해 봐야 모든 존재들을 근원을 향하게 할 수 있는 거예요.

 


어느 순간 사랑을 깨달았다고 생각해보자구요.. 예를 들어서 고아원, 양로원에 있는 많은 사람들 품고 안아줘요. 노숙자도 품어줘요. 하지만 그들에게 진리를 안 알려줘요. 그들에게 길을 얘기하지 않아요. 길을 열어줘야 해요. 사랑만 그렇게 베푼다고, 진실한 어떤 길을 안내해 주는 건 아니잖아요. 사랑을 베푼다는 것이 그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이 돼줘 하고 그 사랑의 깨달음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자각을 해보는 것을 우리가 보통 말하는 현존이라고 하죠.

깨달음 이후의 삶. 보통의 깨달음은 뭘까요? 한 개인의 깨달음이에요. 존재성을 깨달은 거죠 이제. 천지자연의 이치를 깨달은 것. 그 다음은 뭐예요? 그 깨달음으로 끝날까요? 삶을 살게 만드는 근원적인 원동력. 바로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신성인 본성적 그리움. 이것이 답이라고 할 수 있어요.

명상도 그 목적성을 놓고 그 흐름 속에서 분명하게 할 수 있고요. 명확해지게 되요. 그리움이 뚜렷해지면 뚜렷해질수록 상대적으로 힘이 강해져요. 파워가 있는 나 자신을 느낄 수가 있어요. 생명력 넘치는 나 자신을 느낄 수가 있게 돼요. 다른 데 흐트러지지도 않아요. 그리움이 정화된다는 것은 곧 카르마가 정화되는 것이고 카르마를 멈추는 힘도 같이 배양하는 거예요.

 


끌어당김의 힘? 바로 카르마를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에요. 끌어당김의 법칙은 잘 모르지만 다 욕망에서 일어나요. 그러니까 카르마가 있는데 이루어질 수 있는 카르마가 있고 내 안에 있는 내재된 카르마가 있어요. 내 안에 내재되어 있진 않으나 하고 싶은 카르마가 있는데 이건 안 이루어져요. 내게 없기 때문이에요. 이것은 그냥 꿈꾸는 거예요.

카르마가 내제 될수 있도록 하는 빠른 방법이 있어요. 나를 알면 돼요. 정말 빠르죠? 나를 알면 되는데 뭘 알까요? 내 안에 있는 카르마를 알면 뭘 끌어당겨야 될지 알 게 되는 거예요. 불필요한 걸 안 끌어당기게 되죠. 내 안에 있는 카르마. 진짜 내 안에 있는 순수 카르마는 뭘까요? 그리움이에요. 진짜 카르마고 신이 역사해 버리는 거고. 근데 그게 아니라 업장. 카르마는 두 종류가 있어요. 원초적인 카르마는 뭐냐면 나의 순수한 존재성이 카르마예요. 신성이라고도 해요. 카르마는 원래 신성이에요. 나라는 개체성으로 내재화된 신성. 이게 카르마예요.

근데 여기에 상의 경험이 일어나고 생존하고자 하는 그런 의식 속에서 애고가 형성돼요. 애고가 형성되면서 형성되는 업장이 있어요. 그래서 장애라는 말을 쓰는 거에요. 장애물 할 때. 장애 한다는 거예요. 순수한 카르마는 신성으로서의 작용성을 가져요. 그런데 여기에 장애를 일으켜요. 결국엔 뭘 장애 하는 걸까요? 신성을 장애 하는 거지요. 신성을 방해해 버리는 거예요. 일종의 필름 하나 덮어 씌우는 거예요. 또는 포장지 하나 덮어 씌우는 거. 그리고 그 포장지의 삶을 살려고 그래요. "이것은 내 것이 아닌데" 어디서 주워들은 건데. 저게 좋아 보여서 취했을 뿐인데. 근데 우리는 이걸 자꾸 이루려고 그래요

 


이건 끌어당기면 법칙하고 전혀 맞지 않는 거죠, 그렇죠? 순수한 내 안에 있는 내게 내재되어 있는 기질과 품성의 카르마가 있어요. 그것은 에너지가 잘 통해요. 그래서 알아져요. 알아진다는 현상만 있는 게 아니라 왠지 그걸 딱 접하게 되면 자신감이 생기고 에너지가 돌다 보니까 딴 생각이 잘 안 일어나요. 그리고 왠지 확신이 생겨요, 그냥. 이게 바로 끌어당김이라는 작용성을 갖는 거예요. 그리고 이것은 인연을 끌어당기게 돼 있거든요. 먼저 끌어당기는 건 영적 인연을 끌어당겨요. 영적 인연이 내 머릿결에 들어오면 지혜를 일으켜요. 그냥 머릿속에서

아, 이건 이거구나. 저건 저거구나. 지혜가 일어나거든요. 이때 놀라운 게 일어나면 전생 기억까지 끌어당겨요. 전생에 내가 잘했던 거. 그게 확 나에게로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하면 될까 싶어서 했는데. 또 잘 돼. 이렇게 하면 되겠다 싶은 그 마음은 어디서 왔을까요? 두 가지예요. 전생 기억 또는 영적 협조. 이 두 가지로 오는 거야. 그런 거 있잖아요. 제 지인분 중에 한 분은 "참 기억력이 별로 안 좋았다. 나 공부 참 못했다." 그런데 성당에 가서 찬송가를 하면요. 한 번 들으면 다 외웠다고 해요. 신기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머리가 나쁘진 않은 것 같다고 하면서 고등학교 때 공부 좀 한 번 해볼까 하고 작정하고 했더니 전교 1등을 한 번 해본 적이 있대요. 거의 꼴찌 수준에서 전교 1등 해가지고 의심을 산 적이 있다고 하셔요.

 


이것은 무슨 말일까요? 카르마의 흐름이라는 거는 마치 전생 기억까지 확 끌어당기는 거에요. 생각해 보자고요. 뭐가 잘 돼. 이렇게 하면 잘 될 거라는 그 생각이 들어왔어요. 그게 영적 협조로 말할 수 있지만 전생 기억으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기억이 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내가 공부를 해. 했는데 알겠는 거야. 알겠는 건 기억이 잘 날까요? 기억이 안 날까요? 내가 이미 전생에 했던 걸 공부하고 있어요. 하나를 봤더니 다음 것도 생각나. 혹시 이거 아니야? 그때는 진짜 그거야. 어랏? 기억이 막 나는 거죠. 기억을 끌어당겨요. 그래서 알아져 버리는 거예요. 지성이 밝아져 버리는 거죠.

그러니까 나를 안다라는 것은 끌어당김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아가는 기림과 동시에 또 하나는 내게 불필요한 나의 존재성이 아닌 업장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들이 정말 많거든요. 쓰잘데기 없는 게 정말 많죠. 내게 본래 내재하는 순수함과 쓸데없는 것, 이걸 구분 지어야 돼요. 이걸 구분 짓게 되면 어떻게 되냐면 이 쓸데없는 것을 내가 하지 않게 돼 있어요. 할 것만 해야 해요. 에너지가 도니까요. 그래서 애를 많이 써야 돼요

 


자, 이걸 빨리 구분 짓는 방법이 뭐겠어요? 나의 본성적 그리움에 몰입하는 거예요. 다른 말로 나 자신에 몰입하는 것이고 더 깊게는 나의 카르마에 몰입하는 것이고 본성적 그리움 신성에 몰입하는 거예요. 그럼 명확해지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머리가 맑아져요. 에너지가 도니까. 생각을 내가 배제하게 돼요. 에너지에 의해서. 그래서 정화가 일어나요 저절로, 끌어당김의 법칙에 대해 풀어 보았는데 깊이 이해하기보다는 가슴으로 받아들여 수용해 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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