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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리 투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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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던 회사의 대표님은 항상 자신감이

넘쳐 보였습니다. 동탄에 아파트도 몇채가 있었고, 강원도 삼척에

땅도 여럿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특히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사장님들 만나뵈면 크게

부동산 자산이 있는 분들과 없는 분들이 나눠져 있습니다.

오늘은 부동산투자로 엇갈린 두 사장님의 이야기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사이먼리 토지연구소! 땅투자로 엇갈린 두 사장님 이야기



두 사장님은 업종도 같고, 지역도 같고 규모도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IMF를 벗어나 약간의 여유가

생기고 부천지역에서 공업지역을 추진한다는 소문을 듣고

투자를 할까 하고 사무실에 방문하여 인연을 이어가게 된 분들입니다.


 이때 두 분 모두 5천여만원의 여유 돈이 있었습니다. 

이 지역에 대한 개발 소문을 이미 들은 뒤였습니다.

그런데 투자를 실행하는 단계에서 두 분의 운명이 나뉘게 되었습니다.


김사장님은 7천여만원을 대출 받아 1억 2천만원을 부동산에 투자했습니다.

반면 원사장님은 회사설비에 5천여만원을 투자했습니다.

이 후 사업이 잘되어 김사장님은 1년여만에 대출금을 갚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금리 대출을 받아 공장을 지을 수 있는 녹지지역의 땅 500평을 

3억에 추가 구입을 하였습니다. 



이때에도 원사장님과 함께 사려고 했으나 원사장님은 최신 설비를

보강하는 데 쓰고 부동산 투자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15년이 지난 2015년 말 결과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김사장은 그동안 개발한다고 하던 지역에 시가로는 8억여원이 

되는 1,200평의 논(답)을 갖고 있었습니다. 


처음 투자금은 1억2000만원이었죠. 다리가 놓여지고 개발이 된다는

강화 삼산면에다 시가로 3억여원이 되는 2,000여평 땅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부천에서 제일 좋다는 주상복합에 살고 있습니다.



 또, 녹지지역에 구입했던 농지는 공장(제조업)으로 개발하여 

지금은 25억대의 부동산으로 키워서 대략 시가로 36억의 자산이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많은 대출금이 남아 있고 그동안 이자로도 상당한 돈이 지출

되었지만 그래도 투자로 상당한 부를 축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원사장님은 투자를 하지 않고 시설개선에만 치중을 하였기에

그 이후 추가적인 자산 증가는 거의 없는 실정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 요즘같이 공장의 일거리가 줄어들 때 김사장이 일을

더 많이 할까 원사장이 더 일을 많이 할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김사장이 더 일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여유가 있는 사람을 더 신뢰하고

일을 맡겨도 신뢰가 가는 사람에게 맡긴다고 하면 이해가 갈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요즈음은 김사장이 밀려오는 일거리를 원사장에게 주어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하네요.


 참 우리네 삶이 어느것이 정답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투자의 힘"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posted by 사이먼리 투자연구소

직장생활을 하면서 땅을 산다? 월급은 빠듯한데 무슨 땅을 사나

하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저 또한 땅에 관심이 없었을때는

그런 생각이 강했지만, 땅에 조금씩 투자를 하기 시작하면서

땅의 무한한 가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2018년 현재

신도시로 뒤집어질 땅을 미리 알고 사는 것이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땅으로 돈 번 사람들단 1평이라도

샀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시골 면사무소에 근무하는 공무원 오서기(주무관)이야기 입니다.


사이먼리 토지연구소! 직장다니며 땅을 사모았던 공무원 이야기



농사짓는 집안에서 태어나 고향 면사무소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결혼하고 분가할 때 다른 사람들처럼 땅 한 평도 받지 못하고 그저 

집 한 채 받아 살림을 시작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농사를 해왔으므로 이웃 주민들에게 주변에 있는 농지를

임대하여 3천여 평의 농사를 지으면서 근무했습니다. 

봉급으로 생활비와 농사 경비를 충당하고 새벽이나 

저녁은 물론 휴일에도 틈나는 대로 농사일을 하였습니다.



가을에 추수하면 54가마 정도 쌀을 수확하게 됩니다. 

도지(임대료)로 14가마를 주고 40가마 정도 남았습니다.

벼를 농협에 수매하거나 도정해서 쌀로 팔면 대략 600만원

정도 수입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농사짓는 비용을 적금을 붓듯이 투자하여 연말에 목돈을 타는 

투자를 한 것입니다. 그동안 봉급과 농사를 지어 얻은 돈 1천만원

정도가 모이자 6천만원 정도하는 농지를 경매로 낙찰 받아 땅을 

마련하였습니다. 부족한 돈은 대출로 해결하구요. 그리고 수확

후에는 몇 년간 대출금을 갚아 나가고 다시 돈이 모이면 땅을 

사는 방식으로 투자를 반복하였습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의 재산은 어떤 변화를 겪고 있을까요?

공무원으로만 사는 주변 동료들은 자산이나 여윳돈이 거의 없는 

실정이지만, 그는 이미 농지가 1,500여 평이 되었습니다. 

가치로 보면 3억이 넘습니다. 그는 이렇게 하여 투자의 

첫 단계(종자돈 모으기)를 넘어섰습니다. 


이후부터는 그 굴러가는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돈의 마력이랄까요? 시간이 갈수록 수입이 커졌고 돈이 돈을 

벌어주는 땅복리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오 서기는 처음부터 이렇게 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에게는 멘토가 있었으니 바로 동네 선배인 조 서기였습니다.

지금은 면장으로 모시지만 그 선배는 맨주먹으로 시작해

농사일을 시작했고, 면 서기를 성실히 이행하면서 불굴의

의지로 살아왔습니다. 40년이 되어가는 지금은 면 내에서

유지로 통합니다. 후배인 오 서기가 했던 것처럼 봉급을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농사를 짓고 가을에 목돈이 생기면

대출을 끼고 다시 농지를 사고 그러다가 대출금을

다 갚으면 또 다시 농지를 샀습니다.



지금은 농지가 1만여 평에 이르고 일부 농지는 전용해서

임대를 주어 연간 소득이 억대가 훨씬 넘습니다.

 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따르던 오 서기는 조 서기를 

그대로 따라한 것밖에 없습니다. 


선례가 있으니, 그저 따라서 실천한 것입니다. 


이미 돈을 버는 구조를 알았으니 향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자산의 규모가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우리는 한가지 투자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시대가 변해도 땅 투자의 기본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posted by 사이먼리 투자연구소

얼마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 생신이시라

시골에서 올라오셔서 식사자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농사일을

하고 있으신 두분을 뵈니 마음이

짠했습니다. 평생 일만해온 농부의 삶을

사셨던 두분,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땅을 안사놓으셨네요.


오늘은 농사만 지으며 한우물만 파서

땅부자가 된 두 농부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이먼리 토지연구소! 한우물만 파서 땅부자된 두 농부이야기



먼저 무안에 사는 이농부(가명)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남의 집 머슴으로 어려운 환경에 태어났습니다.

집안이 가난하니 소학교(지금의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남의 집 일을 하면서 농사만 짓고 살았습니다.



머슴 새경(머슴이 주인에게서 한 해 동안 

일한 대가로 받는 돈이나 물건)으로 

받는 쌀 10여 가마를 모으고 모아서 주변에 

나오는 갯벌 땅을 사들여 개간하였습니다.



남들은 농사짓기가 힘들다며 방치하는 땅들을 

그는 오히려 싼 값에 사들여 개간을 하고, 

그 곳에서 농사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에게 갯벌을 개간하는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땅이 늘어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경지정리가 되면서 농사짓기가 

한결 수월해졌고, 전라남도 도청이 들어오면서 

남악신도시로 개발이 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땅값이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좋은 값에 논을 팔고 목포로 

나가서 장사도 하고 건물도 샀지만, 농사밖에 모르는 

이농부씨는 그저 묵묵히 농사만 지을 뿐이었습니다. 


 남악도시가 개발이 되면서 보상금도 받게 되었지만, 

그는 남들이 다하는 것처럼 수익형 부동산이라고 

불리는 건물을 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웃인 영암과 해남의 논들을 계속하여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또 그곳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처럼 농지를 구입하다 보니 본인과 

가족명의로 몇 십만m²의

농지를 소유하게 되었으며, 

그 규모가 가히 기업농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지금도 그는 매년 농지를 사들이고 있습니다. 



수익형 부동산이 대세라지만 그에게는 딴 세상인듯 합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렇게 오랫동안 땅 투자를 하며

불리고 늘리는 것이 또한 수익형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일반적으로 1,000m²(300평 / 한마지기 반)의 

논에서 생산되는 쌀은 450kg 정도입니다.

여기서 경영비용으로 30%가량이 들어가고

나머지가 수입이 됩니다.


물론 땅값을 넣고 계산하면 쌀에서

얻는 수입이 터무니 없이 적을 수

있지만 어쨌든 1년이면 60여만원 

정도의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땅의 넓이를 100,000m²로 환산하면 

6천여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벌어들인 수입을

생활비와 투자로 나누어 생각해봅시다.

생활비 일부를 제하고도 인근의 농지

3~4천m²를 살 수 있는 자금이 생기네요.

매년 땅을 사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2~3년 단위로 모아서 투자를 한다면 

1만m² 단위로 구입이 가능한 규모입니다.


이렇게 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땅도 

늘고 쌀의 생산량도 늘어나는 것입니다.


 이농부씨는 지금도 농사에 전념하면서 값싼 농지를 사들여서 농사를

짓고 있으니 땅이 늘어나는 속도는 훨씬 빨라졌습니다. 

땅이 많아지면서 소출도 많아지고 자연히 수익도 늘어납니다.

땅을 살 여력이 매년 조금씩 늘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금융투자와 비교한다면 마치 복리처럼 땅이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가 땅부자가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부지런히 주어진 일에 전념한 결과 땅이 땅을 키우는 

역할을 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농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70이 넘었지만 아직도 일선에서 농사를 짓습니다.




천평야(가명)씨는 김포에서 몇 대에 걸쳐 농사만

짓고 있는 사람입니다. 비록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비교적 여유 있는 농가에서 해방둥이로

나고 자라 중학교만 졸업하고 어려서부터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부자라 할수는 없지만, 그래도 20여 마지기의 논(13,000m²)을 

가지고 있어서 밥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배운 것 이라고는 죽을힘을 다해 농사일에

전념해야 한다는 목표의식 뿐이었습니다. 



그는 이 하나의 정신으로 그저 농사일에만 매달리며

살았고 60년대 개발 붐이 일기 전에는 

장리[(長利) - 춘궁기 등에 양식이 모자라는 사람이

추수하면 장리로 갚기로 하고 빌리는 벼,

장리란 원칙적으로 연 5할의 이자를 말한다 ] 를 놓고

받아들여서 돈을 불렸고, 그렇게 불린 돈으로 이웃에게

매물로 나오는 논이나 밭들을 사들였습니다.


그가 논과 밭을 사들인 이유는 농사를 더 열심히

지어 소출을 늘리기 위함이었을 뿐 다른 목적은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논밭이 늘어도 그는 자신의 본업인 농사를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60년초부터 그렇게 사들인 땅들이 60여년이 다 되어가면서 

30만m²나 되었습니다. 어엿한 땅 부자가 되었지만 그는

눈만 뜨면 논밭에서 일을 하는 농부가 더 잘 어울려 보입니다.


 주변에서 개발 소문이 퍼지면서 "땅 값이 올랐으니 가진 

 다 팔고 다른 일을 하자 "고 부추기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언제까지나 농사일을 하며 고되게 살 것이냐는

말도 듣기도 하며, 이제 그만큼 땅을 

넓혔으면 그만할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충고의 목소리들이 많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에서는 땅을 팔아 

목돈을 마련한 후 도시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긋지긋한 농사에서 벗어나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천성이 농사꾼이라 오로지 농사일에만 매달렸습니다.


"농사를 빼면 잘하는 일이 없다"는 편이 오히려 

그에게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땅이란

계속 사 모아서 늘려 가는 것이지, 팔아서 이문을

남기는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남들이야 무엇을 어떻게 하든 그에게는

땅에서 자라 땅을 일구며 사는 

농사꾼의 유전자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가진 땅의 1/3에 가까운 9만

m²의 땅이 신도시로 편입이 되었습니다. 

일부는 보상을 받고 일부는 택지로 땅을 받게 되었고, 

일부는 주거지역으로 편입이 되어 보상과 대토로 받은 

땅이 상업지역에 1천m², 주거지역에 6만m²,에 이르렀습니다.



그 중 일부는 공장이 지어져 

월 임차료만 2,400만원이나 나옵니다.


하지만 주거지역에서는 공장을 할수가 없다고 이주하라고 하고

또 주거지역 나대지는 주거용도로 개발해서 사용하라고 하는

통에 지금은 이 땅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하여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고 합니다. 농사만 짓던 사람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이 없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잘 가꾸고

보존하여 가장 효과적인 이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는 택지지구 내의 땅 61,000m²을 비롯하여 그 연접한 

지역에 있는 경지 정리된 논 9만m², 산 8만m²를 보유하고 있으니

어림잡아 시가로 환산해 보면 500~600억에 달할 것입니다.


두 농부의 사례를 보며 느낀점





posted by 사이먼리 투자연구소

대구에 사는 법무사 최법무(가명)씨의 이야기입니다.

대구에서 법무사를 하는 그는 매일같이 

똑같은 일상에 지쳐 있었죠.

1977년 초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물려주신 땅이 팔리는 바람에 1억이 생겼습니다.


사이먼리 토지연구소! 1억으로 1000억대 부자가 된 법무사이야기



처음에는 대구 법원 인근에 "사무실로 쓸 만한 건물을 살까?"

하여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꿨습니다. 

나중에 오를 만한 땅을 사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왜냐하면 물건은 사는 순간 감가상각으로 인해 

가격이 떨어지는데, 땅은 매년 공시지가가 오르기 때문이죠.

게다가 건물은 이것저것 신경 쓸일이 많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직업이 법무사이니 대구법원 근처를 돌아다니며

땅의 가격을 알아보았는데, 그때 당시 법원 근처 땅은 

평당 50만원 수준이었습니다. 1억이라고 해봐야 땅을 

200평밖에 못사는 것이죠. 


평당 50만원이면 현재도 비싼 땅인데 나중에 

"평당 1천만원까지 올라갈까?" 생각하니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평당 1000원짜리 땅이면 나중에 

100만원까지 갈 수도 있지만, 

평당 50만원짜리는 5천만원이 되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대구에서 가장 

싼 땅을 사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마음에 드는 땅이 하나 나왔는데,

화원읍 일대의 땅이었습니다.


사실 그곳은 구역만 대구이지 대구 시내와는 

너무 많이 떨어져 있었고 교통수단도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인근에는 대구교도소가 있어서 사람들 

인식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곳 임야의 땅값은 

평당 1000원 정도였습니다.


 사실 대구 법원 주변 땅은 이미 너무 비싸서

별로 오를 것 같지 않았고, 반면 대구교도소

인근의 땅은 너무 싸서 장기간 보유했을 때

오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평당 1000원을 주고

10만평을 1억에 매입했습니다.


 그 후로 그 땅은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30년이 지난 2007년 즈음이였습니다. 

건설회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무슨 일인가 물어보니 땅을 팔라고 합니다.

얼마냐 물어보니 평당 100만원에 팔라고 합니다.

머릿속으로 계산해보니 

10만평 X 100만원 = 1000억원이었습니다.


속으로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일부만 팔고 나머지는 팔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논밭만 있던 화원읍에 대구지하철1호선과

브랜드아파트가 건설되었습니다.



1억으로 1000억대 부자가 된 법무사이야기

였습니다.



posted by 사이먼리 투자연구소

영종도에서 버스기사를 하는 천만원(가명)씨가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영종도가 아무것도 없는 조그만 어촌 마을이었습니다.


사이먼리 토지연구소! 영종도에서 벼락부자된 버스기사 이야기



주로 동네 어르신들이 버스를 이용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버스기사와 나눕니다.




그래서 버스기사는 동네 사정을 잘 알고 있죠.

동네 어르신들이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데

농사의 약점이 춘궁기입니다. 




가을에 추수를 하니 가을에는 돈이 많으나 

봄에는 돈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봄이면 보릿고개라는 춘궁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네에서 농사짓는 사람들 죄다 아들과

딸들을 외지로 유학을 보냈는데 등록금은 봄에

내야 하니 농사와 등록금의 상성이 맞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나라에서 학자금대출을 해주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버스 기사가 그분들의 사정을 알고 월급에서 

떼어 보태주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을 추수가 끝나도 돈을 못갚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돈 대신

땅을 받기 시작했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버스기사의 땅은

하나둘 늘어났습니다. 


매년 반목되는 패턴이었구요. 

그러기를 수십년, 버스기사 자신도 자기 땅이 어디에 

얼마만큼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꽤 많은 양이 되었습니다.

 이후 드라마와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가진 땅들이 일부는 인천공항으로 수용이 되었고, 

또 나머지 땅들은 영종신도시에 편입이 되면서

소위 벼락부자가 되었다.





posted by 사이먼리 투자연구소

이 이야기는 인천시청이 들어선 구월동 

인근에서 똥을 푸던 할아버지 이야기입니다.


사이먼리 토지연구소! 인천에서 거부가 된 똥푸는 할아버지 이야기



똥을 푸는 동자풍(가명)할아버지는 6.25전쟁 때 

부모를 잃고 혈혈단신으로 내려와 온갖 고생을 다했습니다.

구두닦이, 신문배달, 건설 일용직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도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남의 집 똥을 푸는 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예전부터 동자풍씨의 꿈은 자신 소유의 땅을 

한 평이라도 갖는 것이였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요!. 

자신이 번 돈으로는 농사를 지을 만한 땅 한 

평을 사기도 힘들었습니다. 


결국 농지가 아닌 아무 땅이나 사서 보유라도 

해보자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동안 죽을힘을 다해 벌어둔 얼마간의 

돈을 탈탈 털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인천에서 가장 싼 땅을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그 당시 시청이 동인천에 있었는데 인천으로 보면

서쪽 제일 끄트머리 쪽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동쪽 끝과 북쪽 끝인 땅은 행정구역상 

인천이기는 하지만 인천이라고 볼 수 없는 곳 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자풍씨는 지금의 남동구인 곳의 작은 돌밭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당시 그곳이 인천에서 제일 쌌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천 중심지에서 멀고 땅이 돌로 뒤덮여 있어서

아무 쓸모없는 땅이었습니다. 

땅이 무려 평당 10원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아이들이 먹는 아이스케키가 5원이었으니

정말 싸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동자풍씨의 수입은 한 달 몇 천원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 그 돌밭은 계속해서 샀습니다.

그러기를 30년. 이제는 제법 큰 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인천이 발전하면서 동쪽으로도 인구 분산이 많이 되었고,

더구나 인천시청이 너무 서쪽 끝에 치우쳐져 있다는 이유 때문에

시민들의 민원도 지속 되었습니다. 


결국 인천시청을 옮기는 계획은 세우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국 시청 자리로 낙점된 곳이 인천에서 

가장 싼 곳이며 암석이 많아 지반이 튼튼한 현재의 

남동구 지역이 되었습니다.


동자풍씨는 하루아침에 엄청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고급승용차 트렁크에 곡괭이 등

농기구를 싣고 다니며 남의 밭농사를 짓습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병이 난다며 아들, 며느리가 말리는

데도 굳이 노동을 합니다. 진정한 서민갑부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네요. 


동자풍 할아버지는

점심 지나 오후가 되면 며느리가 고급승용차를 

끌고 참을 주러 옵니다.






posted by 사이먼리 투자연구소

사이먼리 토지연구소! 3기 신도시 후보지 알아보기


3기 신도시 후보지 알아보기



먼저 1기 신도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89년 4월 노태우정부는 폭등하는 집값을 안정시키고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 근교 5개의 1기 신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 5개는 고양시 일산, 성남시 분당, 부천시 중동, 안양시 평촌, 군포시 산본입니다. 1992년 말 입주를 완료하고 총 117만명이 거주하는 29만2000가구의 대단위 주거타운으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지난 1985년 69.7%였던 주택보급률이 1991년에는 74.3%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2기 신도시는


수도권  1기 신도시 개발 후 전체적인 집값이 다시 상승하자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 서울 집값이 급등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경기도 김포ㆍ파주ㆍ화성ㆍ판교ㆍ평택, 인천 청라 등에 대규모 주택단지를 공급하면서 수도권 2기 신도시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3기 신도시는


수도권  1기 신도시 개발 후 전체적인 집값이 다시 상승하자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 서울 집값이 급등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경기도 김포ㆍ파주ㆍ화성ㆍ판교ㆍ평택, 인천 청라 등에 대규모 주택단지를 공급하면서 수도권 2기 신도시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위에 사진을 참고 하시면 3기 신도시 후보 유력도시를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3기 신도시 추가 발표 시기가 

다음달(2018.12)로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유력 후보지로 떠오른 안양, 광명, 하남, 고양 지역 

부동산 시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들 지역에서 기존에 추진하던 대규모 

택지개발 사업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맞물려 유력 신도시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13일 부동

 공급확대 정책의 일환으로 "12월 중 3기 신도시

2곳을 추가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그동안 유력 3기 신도시 후보지로 꼽혔던

광명·시흥특별관리지역안양박달테크노밸리,

고양 장항동대곡역세권, 하남 감북지구 등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광명·시흥특별관리지역은 애초 광명시 광명동, 

시흥시 과림동 일대 1천737만㎡ 부지에 

9만5천 세대 규모의 보금자리주택 

조성이 계획됐던 곳이기도 합니다.  


서울 서남권과의 접근성이 좋고 주변에

KTX 광명역과 서울외곽순환도로,

제2경인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 등

광역교통망이 확충돼 서울의 인구를

분산시킬 수 있는 유력 후보지로 평가받았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와 사업 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재무여건 악화,

원주민들의 반발 등으로 2014년 결국 지정이

해제돼 현재 주민들이 거주하는 취락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됐습니다. 


안양시가 지난해 2월 조성계획을 발표하고 

역점사업으로 추진 중인 

'박달테크노밸리(서안양친환경융합테크노밸리)도 

유력 후보지로 떠올라 있습니다.  


박달테크노밸리 사업은 안양 서부권 구도심인

만안구 박달동 일원 355만㎡ 부지에

IT산업과 R&D(연구개발) 시설 및 주거단지가

어우러진 복합 테크노타운을 오는 

2025년까지 조성하는 사업입니다. 


또한 고양 장항동 일대도 3기 신도시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고양 일산동구 장항동 일대 

156만 2천157㎡ 부지에 공동주택 1만2천340가구 

및 단독주택 230가구 등을 짓는 '고양장항 공공주택지구'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지역입니다.  


지난 2016년 4월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돼 올해 

4월 지구계획이 승인되면서 사업추진이 본격화된 곳입니다. 


장항동 뿐 아니라 고양시가 역점 추진 중인

 '대곡역세권 개발사업'의 대상지도

 3기 신도시 후보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최근 GTX-A 노선의 연내 착공이 사실상

 확정되면서 복합환승센터 조성이 예고돼 

관심이 쏠리고 있는 덕양구 대장동 일원 179만㎡ 부지입니다.

    

경의선과 일산선, 교외선, GTX, 대곡~소사선, 환승역사 등 

철도는 물론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자유로, 제2 자유로, 

국지도 39호선, 중앙로 등 교통여건이 좋은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남 감북동·감일동·광암동·초이동 일대에 

조성된 266만㎡ 규모의 택지개발지구인 '하남 감북지구

일대가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곳 역시 2015년 주민과 토지주들의 반대로 

보금자리지구에서 해제된 지역으로, 서울 송파구와 

바짝 붙어 있고 신도시에 육박하는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곳이어서 정부의 주택공급 발표 때 마다 

유력한 후보지로 꼽혀왔습니다. 


애초 이곳에서는 보금자리주택 1만4천가구를

포함해 모두 2만 가구의 주택이 공급될 예정이였습니다. 



posted by 사이먼리 투자연구소

어제 토지컨설팅 차 역삼역에 다녀오는 길에

구룡마을을 보고왔습니다.

 구룡마을은 우리가 얼마전 진행했던

상계동 백사마을(바로가기)

많은 비교를 하며 설명을 했었는데 지금

구룡마을은 시위성향이 강한 플랜카드가

여기저기 난무하며 난리도 아닙니다.

일단 현장사진 보면서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사이먼리 토지연구소! 구룡마을 답사 후기 개발상황




플랜카드만 봐도 살벌하죠?

SH(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 수용으로 인해 보상문제로

지주들이 불만이 가득한 상황입니다.


근데 이게 과연 원주민들이 이럴까요?

물론 원주민들도 

어느정도 있기야 하겠습니다만,

항상 그래 왔듯이

대부분이 본래 지주가 아닌 투자자들

분위기를 종용하고 있다라는 겁니다.



구룡마을 뿐만이 아니라 

어느지역이든 개발이 들어가기 전 

토지 투자자들은 고급정보들을 미리 알고 

원주민들에게 싼가격에 매수를 합니다.

(마치 영화 '강남1970' 에서 처럼 말이죠)



그리고 나서 이렇게

시위를 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플랜카드에 

보상금액 때문에 토지주들과 SH건설과

줄다리기를 하는 듯합니다. 보상해주는 입장에서는 

보상금액을 조금이라도 낮게 쳐주려할 것이고

보상받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많은 돈을 보상받기 위해서 저렇게 싸우는 것입니다.



서울에도 이런 시골마을이 아직까지 존재합니다.


현재 구룡마을과 백사마을이 

대표적이라고 보실수 있습니다.

서울시에 마지막 남은

달동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구룡마을은 아시는분들은 아시겠지만 

서울시에서 쫒겨난 속히 못사는 사람들이 들어간 

판자촌 이였습니다. 그로인해 무허가 건물이 

390여 개나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얼마전 화재도 마찬가지로 공권력이 개입 

됐을만큼 입주민과의 갈등은 점점 더 심해져 갑니다.

특히나 판자촌 주변에 있던 임야들을 

흡수를 하게 되면서 

또 다시 보상금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수년전부터 구룡마을 개발이야기가 나왔을때 

판자촌 주변의 있는 땅값이 들썩였을 때, 

부동산에 관심있는 분들은 다 아실겁니다.

땅값이 정말 말도 안되는 금액까지 

올라갔던 곳이였습니다.

구룡마을

실제로 판자촌 주변에 있는 임야들이 흡수가 되면서

큰 투기판이 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그 땅의 번지수를 조회해서 분석해 보았습니다.



이곳은

지구단위계획구역(2016.12.8)에 지구지정

되기전에는 도시지역내 자연녹지

공원저촉으로만 해당사항이였습니다.

그 후 구룡마을이

지구 단위 계획 구역으로 수립 되면서

주변에 있는 미개발지 라인들이 흡수가 되고

지금 현재는 지구 단위 계획 구역으로 지정이 됐습니다.


최근 토지이용계획원을 열람을 해보니

이 토지에는 300여개의 토지관련 규제(법)중

가장 강력한 규제들이 모여있네요.

고도제한, 군사보호시설, 사방지까지

토지에 악영향을 미치는 모든 규제들이

들어가있고 특히나 토지중 가장 강력한 규제인

자연경관지구까지 포함되어 있으며

비오톱 1등급지정과 토지거래허가구역까지

일반인들은 아예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규제와 아예 거래를 못하도록

막아놓은땅 입니다.

구룡마을

 근데 이땅들이 조만간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금액에 거래가 된다라는거죠.

그리고 도로저촉은 실제로

지적도로 본다라고 하면 도로가 없습니다.

근데도 불구하고 도로저촉으로 있는건

벌써 도시기본계획에 수립되면서

도로가 붙어있는 땅으로 바뀔거라는거죠. 

구룡마을


이게 땅입니다!

개발계획에 의해서는 이러한 강력한규제들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고

지금 당장에 현장을 가보면 

그냥 산덩이에 불과하지만 

이땅들이 몇년후에는 아파트가 올라가고 

건물이 올라간다 라는겁니다.

구룡마을


올해 초 확인했던 등기부등본 내역인데

투기꾼들은 이땅에 다 몰렸나봅니다.

 과다 등기부로 확인됐습니다.


 과다등기부는 등기명의인이 500명을 초과한다라는 건데 

1만평짜리 땅에 정말 500명이? 왜 이땅에 들어갔을까요?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그런데 토지거래허가구역이다 보니

설정등기로 1만평짜리 땅에 500명이상이 

본등기를 칠수 없기 때문에

설정등기로 들어가게 된거고 

추후 풀리게 되면 본등기로 진행을 할것입니다.


대략 예상해보면 이땅은 현재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땅은 외지인들 개인에게 거래를 

못할수 밖에 없겠죠.

투기꾼들에게 설정등기로 등기를 치고 

명의이전을 못한 것입니다.


물론 추후 토지거래허가구역이 풀리고 난 뒤에

본등기를 치면서 토지보상을 받고 나오겠죠?

또한 이 투자자들은

장기전세 특별공급 혜택도 받게 되었습니다.

서울시 각 구청이 도시계획사업을 진행하면서

생기는 수용(철거)주택 명의자 본인에게 보상금과

함께 이주대책으로 나오는 장기 전세

입주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과 부동산하는 사람들의 차이점은

미래를 보고 큰그림을 그린다 라는 것입니다.


주변정보와 입지파악, 이런 권리분석이

꼭 필요하다라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땅을 사기전 알아야 할 것이라면

어떠한 정보와 호재거리가 있는지 확인을 하고

투자를 하게 된다라면 투자를 망설일 이유 없습니다.


posted by 사이먼리 토지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