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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리 투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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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 생신이시라

시골에서 올라오셔서 식사자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농사일을

하고 있으신 두분을 뵈니 마음이

짠했습니다. 평생 일만해온 농부의 삶을

사셨던 두분,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땅을 안사놓으셨네요.


오늘은 농사만 지으며 한우물만 파서

땅부자가 된 두 농부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이먼리 토지연구소! 한우물만 파서 땅부자된 두 농부이야기



먼저 무안에 사는 이농부(가명)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남의 집 머슴으로 어려운 환경에 태어났습니다.

집안이 가난하니 소학교(지금의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남의 집 일을 하면서 농사만 짓고 살았습니다.



머슴 새경(머슴이 주인에게서 한 해 동안 

일한 대가로 받는 돈이나 물건)으로 

받는 쌀 10여 가마를 모으고 모아서 주변에 

나오는 갯벌 땅을 사들여 개간하였습니다.



남들은 농사짓기가 힘들다며 방치하는 땅들을 

그는 오히려 싼 값에 사들여 개간을 하고, 

그 곳에서 농사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에게 갯벌을 개간하는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땅이 늘어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경지정리가 되면서 농사짓기가 

한결 수월해졌고, 전라남도 도청이 들어오면서 

남악신도시로 개발이 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땅값이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좋은 값에 논을 팔고 목포로 

나가서 장사도 하고 건물도 샀지만, 농사밖에 모르는 

이농부씨는 그저 묵묵히 농사만 지을 뿐이었습니다. 


 남악도시가 개발이 되면서 보상금도 받게 되었지만, 

그는 남들이 다하는 것처럼 수익형 부동산이라고 

불리는 건물을 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웃인 영암과 해남의 논들을 계속하여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또 그곳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처럼 농지를 구입하다 보니 본인과 

가족명의로 몇 십만m²의

농지를 소유하게 되었으며, 

그 규모가 가히 기업농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지금도 그는 매년 농지를 사들이고 있습니다. 



수익형 부동산이 대세라지만 그에게는 딴 세상인듯 합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렇게 오랫동안 땅 투자를 하며

불리고 늘리는 것이 또한 수익형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일반적으로 1,000m²(300평 / 한마지기 반)의 

논에서 생산되는 쌀은 450kg 정도입니다.

여기서 경영비용으로 30%가량이 들어가고

나머지가 수입이 됩니다.


물론 땅값을 넣고 계산하면 쌀에서

얻는 수입이 터무니 없이 적을 수

있지만 어쨌든 1년이면 60여만원 

정도의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땅의 넓이를 100,000m²로 환산하면 

6천여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벌어들인 수입을

생활비와 투자로 나누어 생각해봅시다.

생활비 일부를 제하고도 인근의 농지

3~4천m²를 살 수 있는 자금이 생기네요.

매년 땅을 사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2~3년 단위로 모아서 투자를 한다면 

1만m² 단위로 구입이 가능한 규모입니다.


이렇게 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땅도 

늘고 쌀의 생산량도 늘어나는 것입니다.


 이농부씨는 지금도 농사에 전념하면서 값싼 농지를 사들여서 농사를

짓고 있으니 땅이 늘어나는 속도는 훨씬 빨라졌습니다. 

땅이 많아지면서 소출도 많아지고 자연히 수익도 늘어납니다.

땅을 살 여력이 매년 조금씩 늘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금융투자와 비교한다면 마치 복리처럼 땅이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가 땅부자가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부지런히 주어진 일에 전념한 결과 땅이 땅을 키우는 

역할을 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농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70이 넘었지만 아직도 일선에서 농사를 짓습니다.




천평야(가명)씨는 김포에서 몇 대에 걸쳐 농사만

짓고 있는 사람입니다. 비록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비교적 여유 있는 농가에서 해방둥이로

나고 자라 중학교만 졸업하고 어려서부터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부자라 할수는 없지만, 그래도 20여 마지기의 논(13,000m²)을 

가지고 있어서 밥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배운 것 이라고는 죽을힘을 다해 농사일에

전념해야 한다는 목표의식 뿐이었습니다. 



그는 이 하나의 정신으로 그저 농사일에만 매달리며

살았고 60년대 개발 붐이 일기 전에는 

장리[(長利) - 춘궁기 등에 양식이 모자라는 사람이

추수하면 장리로 갚기로 하고 빌리는 벼,

장리란 원칙적으로 연 5할의 이자를 말한다 ] 를 놓고

받아들여서 돈을 불렸고, 그렇게 불린 돈으로 이웃에게

매물로 나오는 논이나 밭들을 사들였습니다.


그가 논과 밭을 사들인 이유는 농사를 더 열심히

지어 소출을 늘리기 위함이었을 뿐 다른 목적은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논밭이 늘어도 그는 자신의 본업인 농사를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60년초부터 그렇게 사들인 땅들이 60여년이 다 되어가면서 

30만m²나 되었습니다. 어엿한 땅 부자가 되었지만 그는

눈만 뜨면 논밭에서 일을 하는 농부가 더 잘 어울려 보입니다.


 주변에서 개발 소문이 퍼지면서 "땅 값이 올랐으니 가진 

 다 팔고 다른 일을 하자 "고 부추기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언제까지나 농사일을 하며 고되게 살 것이냐는

말도 듣기도 하며, 이제 그만큼 땅을 

넓혔으면 그만할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충고의 목소리들이 많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에서는 땅을 팔아 

목돈을 마련한 후 도시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긋지긋한 농사에서 벗어나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천성이 농사꾼이라 오로지 농사일에만 매달렸습니다.


"농사를 빼면 잘하는 일이 없다"는 편이 오히려 

그에게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땅이란

계속 사 모아서 늘려 가는 것이지, 팔아서 이문을

남기는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남들이야 무엇을 어떻게 하든 그에게는

땅에서 자라 땅을 일구며 사는 

농사꾼의 유전자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가진 땅의 1/3에 가까운 9만

m²의 땅이 신도시로 편입이 되었습니다. 

일부는 보상을 받고 일부는 택지로 땅을 받게 되었고, 

일부는 주거지역으로 편입이 되어 보상과 대토로 받은 

땅이 상업지역에 1천m², 주거지역에 6만m²,에 이르렀습니다.



그 중 일부는 공장이 지어져 

월 임차료만 2,400만원이나 나옵니다.


하지만 주거지역에서는 공장을 할수가 없다고 이주하라고 하고

또 주거지역 나대지는 주거용도로 개발해서 사용하라고 하는

통에 지금은 이 땅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하여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고 합니다. 농사만 짓던 사람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이 없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잘 가꾸고

보존하여 가장 효과적인 이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는 택지지구 내의 땅 61,000m²을 비롯하여 그 연접한 

지역에 있는 경지 정리된 논 9만m², 산 8만m²를 보유하고 있으니

어림잡아 시가로 환산해 보면 500~600억에 달할 것입니다.


두 농부의 사례를 보며 느낀점





posted by 사이먼리 투자연구소